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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양필승 Series 2. AI는 기술이 아닙니다. 문명입니다.

  • 작성자 사진: MAILab2021
    MAILab2021
  • 4월 8일
  • 3분 분량


요즘 가장 핫한 이야기 거리는 머니머니해도 AI, 인공지능입니다. AI는 인간대화를 모방하는 챗봇을 구동하고,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예측하고, 우리가 거의 눈치채지 못하는 시스템을 최적화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구보다 세상흐름에 민감한 선전광고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리고 아무데나 AI를 붙입니다. “무늬만 AI”도 무척 많습니다. 몇 년 전, 우리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유럽의 AI창업 중 40%가 “무늬만 AI”라는 보고서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AI에 대한 인기가 높을수록, “무늬만 AI”도 많아질 수밖에 없고, 동시에 막연한 AI공포도 증폭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AI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은 대개 이데올로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로 진보적인 인사들은 AI비관론, AI Dystopia를, 반대로 보수적인 사람들은 AI낙관론, AI Dystopia의 반대말인 AI Utopia라는 표현은 그다지 많이 쓰지 않지만, AI로 인간의 삶이 향상된다는 주장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는 AI로 보편적 고소득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머스크의 보편적 고소득은 2000년 미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앤드류 양이 주장한 보편적 기본소득과는 다릅니다. 우리 나라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보편적 기본소득과 달리, 머스크는 AI낙관론의 입장에서 AI로 인간의 경제가 대폭 개선되면, 그 같은 긍정적 효과가 골고루 펴지기 때문에 보편적 고소득이라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낙관적 비전과 비관적 비전은 서로 충돌하지만 똑같이 핵심을 놓칩니다. AI의 발전은 선택이 아닙니다. 스탠포드대학의 AI 지수에 따르면 2024년 투자는 940억 달러에 달해 인터넷의 초기 붐을 압도했습니다. 이제 AI는 조류를 타거나 대세를 피해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라 머스트(must)가 된 셈입니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전임 바이든 대통령이 2023년 행정명령으로 만든 AI 가이드를 폐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free from ideology” 때문입니다. 즉 AI를 이데올로기, 이념으로 자유롭게 해방시킨다는 취지입니다. 물론 AI낙관론에 가까운 듯 언뜻 보이지만, 저는 트럼프의 AI론은 보다 탈이념적인, 실용적인 AI로 이해합니다. 중구난방같이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AI낙관론과 AI비관론에 치우치지 말고, 설사 탈이념적이고 실용적인 AI론의 차원을 넘어서 AI를 비관하여 기피한다고, 아님 낙관하여 환영한다고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AI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고 문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낙관론이나 비관론보다 중요합니다. 그냥 게임체인저 기술이라고 부르기에는 임팩트가 무시무시한, 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개인이 결코 수용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데부터 AI논의는 출발하여야 바람직하다고 저는 봅니다.



문명이란 역사적으로 인간과 도구에 의해 정의됩니다. 농업혁명이 시작된 신석기문명은 인간이 돌로 도구를 만든 문명이고, 철기문명은 농업혁명을 가속화시키면서 다음단계인 산업혁명의 길을 튼 문명으로 인간이 철로 만든 낫이나 곡갱이를 사용합니다. 다음으로 증기나 전기가 사용되는 문명으로 산업혁명을 일으키지만 인간은 증기나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엔진이란 도구를 사용하는 문명입니다. 그리고 컴퓨터가 등장하여 인간이 컴퓨터란 도구를 사용하지만, 여전히 인간이 컴퓨터를 통제합니다. 그런데 1956년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다트머스대학에서 학자들이 모여 인공지능, 즉 AI란 개념을 정립하고 컴퓨터를 인간 학생처럼 학습시켜 컴퓨터가 사고하도록 만들자는 움직임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기존의 문명이 인간이 도구를 통제하고, 인간이 그 도구를 조작하는 문명이었다면, AI문명은 인간과 도구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인간이 AI란 도구, 아니 컴퓨터란 도구를 일방적으로 조작하는 수준이 아니라, 컴퓨터란 기계가 인간과 협업하는 관계로 전환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생성형AI의 다음 단계를 HYBRID AI, 즉 인간과 기계의 협업으로 AI가 발전한다고 보며, 저도 동의합니다.

 

이렇듯 AI가 단순히 기술이 아니고 문명이라면 개인의 선택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 누가 성공적으로 AI문명에 적응하느냐 아님 누가 AI문명의 낙오자가 되느냐, 즉 AI문명의 적응에 성공하느냐 또는 실패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해결하라고 존재합니다. 국가나 글로벌 공동체가 개인의 AI문명 적응능력을 강화시켜 주고, AI문명 낙오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제공하여야 마땅합니다.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홀로 AI문명에 적응하여 혼자 윤택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오패스(sociopath)로서 나머지 공동체 일원을 외면하는 사람이 될 것이냐를 자문해 보아야 마땅합니다.



우리는 이제 "AI를 받아들일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적응하고, 누가 적응 못하는가?"를 물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마저도 노동력의 14%만이 그같이 새로운 현실에 대한 재교육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전세계적으로 AI교육은 지체되고, AI인프라는 삐걱거리고, AI 형평성은 흔들립니다. 신속하게 정부와 지역 사회는 행동해야 마땅합니다. 사람들을 재교육하고, 변화에 자금을 지원하고, 안전망을 엮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AI문명에 적응하는 사람과 낙오된 사람으로 분열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AI의 열매, 즉 AI 파워와 AI 미래는 가둬놀 수 없습니다. 어떠한 문명도 고립을 통해 지속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협업을 통해 번창합니다. 가격이 비싼 칩과 데이터 확산의 거품은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도록 잘못 인도하고 있으며, 이는  거품과 과잉을 추구하고 있는 방향에 불과합니다. AI는 독점적인 시장 논리를 넘어, 맞춤형이면서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개방형 인프라를 기반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며, 그 혜택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고르게 돌아갈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가르칩니다. 석기에서 철기로 다시 전기까지 새로운 문명전환에 함께 적응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오래 질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인류공동체 내지 국가공동체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 AI문명을 다른사람들과 함께 발전시켜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그러면 단순히 생각만으로 부족합니다.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우선 우리가 공동체 일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바로 여기로부터 AI담론이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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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양필승: 1957년생. 미국 UCLA 중국현대사 박사. 건국대학교 교수와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및 중국 칭화대학 겸임교수 역임, 현 중국 지린 메트로폴리탄기술교육대학 총장, 1999년 CKT그룹 설립, 2018년 매경 세계지식포럼 AI부문 좌장, 2019년 MAILab 메일랩 설립 CEO.

 

MAILab (메일랩) www.mailab.co.kr: 자체 엔진인 i2Brain 및 자체의 AI 슈퍼컴퓨터와 Vision AI Framework, MEGA Image AI Platform 및 MEGA Industrial AI Platform에 터잡아 QSS 통합 솔루션으로 방역, 보안 및 안전에 대한 인공지능 솔루션을 상품화하고, 미국, 캐나다, 중국, 인도에 엔지니어링과 마케팅 조직을 통해 QSS Integrated Solution 등 Industrial AI, 선천성 심장병 알고리즘 등 Medical AI, Robotic AI Fulfilment Service 등 Logistic AI, 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제품의 판매 및 생산을 위한 Beauty AI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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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sryoo@ckt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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